책소개
아홉 살 난 견훤은 백제 의자왕(義慈王)의 8대 손(孫)인 부여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이었다. 하루는 견훤이 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으로 들어가 맞은편에 단정히 앉았다. "아버님, 집에 비장해 두신 품칼을 제게 주십시오" "그것은 왜?" 아버지가 놀라며 견훤을 돌아보았다. "집을 떠나 장차 힘을 기르겠습니다.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이 걸리더라도 백제국을 재 건하고 신라에 원수를 갚겠습니다" 견훤의 이 같은 결심을 듣고 아자개가 눈물을 흘리며 견훤에게 칼을 내주니 견훤은 칼을 품고 길을 떠났다. 견훤이 칭송이 높은 도승을 찾아다니며 산으로 평지로 무정처한 방랑을 계속 하고 있을 때, 동수(桐藪)란 곳에 이르렀다. 그곳 개천에서 멱을 감던 견훤은 산채(山菜)를 씻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하였다. 열 살이 약간 넘을 듯한 애꾸눈의 그 상좌아이는 이름이 선종(善宗)으로, 그 곳에서 멀지 않은 동화사란 절에서 살고 있었다.
저자소개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그의 작품은 저작권이 소멸되었다.